독서후기

프레드릭 플래취/장세희역, <천국엔 새가없다-1>, 훙익출판사, 1992(2013/1/30/수)

魚山/막걸리 2013. 4. 18. 08:44

<저자 소개>

현재 코넬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며 뉴욕병원 산하 코넬 메디컬센타와 파인휘트니스병우너 성 빈센트 병원등에서

30년 넘게 정신의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활동하고 있다.

 

<책 소개>

정신의학자인 플래취 박사와 그의 딸 리카가 함께 쓴 자전적 소설형태의 수기.

딸의 20여년간의 참담한 투병 생활과 딸을 치료하고자 하는 아버지의 인간적인 고뇌와 꿈을 향한 <인간승리>의 표본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수기.

가족에 대한 소중한 의미를 깨닫게 해 주는 책.

 

<퍼온 글>

처음 친구에게 이 책을 받아보았을 때 나는 조금 당황했다. 책이 한 권이 아닌 두권이었고, 굉장히 오래 된 번역본이라 책 안쪽의 종이들이 누렇게 변해있었을 뿐만 아니라, 고서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책을 받게 되었고, 전혀 기대감이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책의 첫 장을 넘긴 순간부터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책의 내용에 매우 깊이 빠져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을 수 없었으며 때로는 화를 내기도,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심지어는 수업 시간 중에도 이 책의 내용이 떠오르고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집중을 못하기도 했다.

이렇게 이 책이 나의 흥미를 유도한 이유는 내용이 독특하고 긴장감 있는 탓도 있지만 내가 지금까지 배운 것과 일치되는 면,

또는 상반되는 면, 그리고 내가 배운 많은 것들을 바탕으로 한 시각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이 대단히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는 책의 줄거리에 대한 부분을 생략하도록 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점, 특히 아동복지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으로써의 시각을 바탕으로 느낀 점을 서술해보도록 하겠다.

먼저, 글을 쓴 작가인 리키의 아버지 프레드릭을 보면서 나는 정신과 의사로서의 그의 입장와 리키의 아버지로서의 그의 입장이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리키가 처음으로 병원에 가서 의사의 입원 권유를 받았을 때 그는 ‘자신이 과거에 이런 식으로 환자들에게 쉽게 입원을 권하고

결론을 내렸는가’ 에 대한 회의를 하게 된다.

그는 과거에 정신과 의사로서 그의 환자들에게 쉽게 ‘정신질환자’라는 꼬리표를 달아 주었다.

의사의 입장으로 그것은 자신의 일에 대한 하나의 권리이자 의무였지만, 그가 리키의 아버지로서 그런 꼬리표를 받게 되니 그것은 하나의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의 꼬리표라는 것을 비로소 느끼게 된다.

프레드릭은 의사로서 정신과 환자들에게 입원이 가장 획기적인 치료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환자와 그들의 가족들이 입원이라는 결정 때문에 느끼게 되는 낙인과 수치심등은 고려하지 못했다.

즉, 정신병으로부터 발생되는 돌발적인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 같은 행동의 수정을 1차적인 목적으로 생각하여 많은 환자들에게 ‘정신질환자’라는 이름표를 달게 한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사회복지사 이야기’ 라는 책이 생각났다.

한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 자신의 사례를 이야기 한 내용이었다.

문제 행동을 하는 아동을 부모가 복지관에 데리고 와서 상담을 하고 몇 일 뒤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라는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라는 이름표가 주는 낙인 때문에 그 가족 모두가 좌절을 하고, 그 좌절이 너무 큰 나머지

 치료에 대한 의욕마저도 사라지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사회복지사 선생님은 단지 상담의 결과를 알렸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클라이언트에게 그것이 낙인이나 수치심 또는 극복할 수 없는 좌절을 가져다 줄 수도 있음에 항상 주의해야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권리와 의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낙인의 꼬리표를 달게 하는가.

나는 아직 공부하는 학생이고, 필드에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내가 봉사하고 있는 교회 유치부에서 가끔 행동이 난폭하거나

 혹은 사회성이 조금 결여된다고 보이는 아이들을 보면서 쉽게 ‘저 아이는 발달지체일 거야’ 혹은 ‘저 아이는 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인 것 같아’ 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물론 나의 그러한 견해가 그 어느 누구에게 전달되지는 않지만, 나의 이러한 신중하지 못하고 거만한 판단이 얼마나 큰 좌절과

수치심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리키의 아버지 프레드릭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둘째, 클라이언트의 비밀보장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사회복지실천론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단원은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부분이었다.

사회복지사가 당면하게 되는 윤리적 딜레마 중 가장 난해한 것이 클라이언트에 대한 비밀보장에 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보니 정신과 의사의 경우도 자신의 환자에 대한 비밀, 그에 대한 프라이버시를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의사의 의무로 인해 리키의 아버지인 프레드릭은 자신의 딸이 병원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 심지어는 전기쇼크를 받았다는 사실 조차도 모른 채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모르고 지난 시간들은 리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아니 오히려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시간이

 되고 만다.

여기서, 클라이언트에 대한 비밀보장.

이를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클라이언트의 비밀보장에 있어서 클라이언트 본인의 의견을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리키의 경우처럼 클라이언트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상태이어서 때때로 정신분열증과 같은 증세를 보이는 경우에도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100% 따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때 그에 대한 비밀보장은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해봐야 할 문제지만 적어도 책에 나오는 여러 의사들의 방법에 대해서는 비판이 가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신병은 말 그대로 육체의 병이 아니라 정신의 병이기 때문에 치료의 과정 하나하나가 클라이언트에게 굉장한 도움이 될 수도,

피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환자와 보호자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클라이언트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음을 간과한 채로 보호자에게 미성년자인 딸의 치료 내용과 과정을 알리지 않은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셋째, 리키를 담당했던 정신과 의사들의 시각이 얼마나 좁은지에 대한 부분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몇 번이나 화가 났었다.

나를 화나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리키의 주치의의 태도였다.

그들이 얼마나 좁고 안일한 시각에서 리키를 바라보았으며, 그것이 결과적으로 리키의 회복을 얼마나 지연시켰는가.

그들은 리키의 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철저하게 행동주의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물론 행동주의 방법이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인 것은 아니며 적절히 사용한다면 굉장히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과,

 리키가 다른 사람들처럼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주치의로서의 강제성이 들어갈 수밖에 없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들은 리키의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를 수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그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수단에 대해서는 전혀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격리병실이나 습포제가 놓인 물리치료실 등의 부적 강화를 통해 리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에 집중하였지만, 오히려

 이러한 행동은 리키에게 자신이 얼마나 절망적인가를 계속해서 일깨워 주는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리키의 회상 중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의 마음 속 끓어오르는 격정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매번 나의 격정을 잠재우는 것은 나 자신의 또 다른 힘에 의해서라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라는 부분은

인간은 자극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이며, 당시의 의사들이 리키가 정신분열증이라는 이유로 그의 생각과 의지를 얼마나 무시 했는가 대한 것들을 생각나게 해 주었다.

그들은 또한 리키가 가진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법에 있어서 매우 좁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리키에게 신경안정제를 투여하고 약물을 복용하게 하며 지금까지의 리키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듣고 그 안에서 원인을 찾음으로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는 지나치게 정신분석학적인 입장에 치우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신분석학은 클라이언트의 문제가 그가 가진 무의식의 세계에서 억압된 것들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렇게 발견된 문제의 원인은 그것을 의식계로 방출해 냄으로서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그에 대해서는 나도 어느 정도 인정을 한다.

실제로 초기 아동기의 경험이 문제행동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으며 그것을 합리적인 방법으로 분출함으로서 문제가 해결되

는 경우를 책을 통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리키의 주치의들이 놓쳤던 부분은 무의식에 있는 문제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부모와 사회와의 상호작용은 무시한 채, 주치의와 리키의 노력만을 사용하려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들은 단지 리키의 이상한 행동과, 상담과정에서 듣게 되는 성장 배경 등을 통해 그 원인을 찾으려고 했을 뿐, 부모 또는 형제와의 상호작용 형태, 일상생활에서의 리키의 사회적응 양상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또한 해결방법에 있어서도 주로 약물에 의존할 뿐 사회적인 상호작용에서 오는 긍정적인 효과들은 철저히 배제하였다.

특히 가족과 분리된 곳에서 지내도록 하는 일, 가족과의 면회를 차단한 일, 심지어는 병원 안에서도 격리 병실을 쓰도록 한 일 등은 그들이 리키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 얼마나 고려하지 못했는가를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리키는 선천적으로 약한 정신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자라나는 과정에서 부모의 불화나 할아버지의 죽음등과 같은 환경적인 요인이 리키의 심리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원인으로 인해 빚어진 문제인 만큼 치료과정에서 가족과의 대화나 긍정적인 상호작용 등이 고려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사들은 그들이 가진 좁은 시각에 의존하여 리키를 치료하려고 하였으며 나는 그에 대해 매우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가장 많이 느낀 점이 바로 ‘강점 활용’에 대한 부분이다.

리키가 빠른 회복세를 보인 국립병원에서와 어얼스 하우스에서의 리키의 주치의들은 리키에게 왜 병이 생겼는지를 묻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극복해 나갈 수 있는지, 그리고 리키가 얼마나 낙관주의적인 사람인지에 대해 계속해서 일깨워주었다.

리키가 그런 병에 걸린 것은 본인의 잘못이 아니며 언제든지 완치될 수 있으며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들을 통해 리키는 굉장한 자신감과 희망, 치료에 대한 의욕을 느끼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그들은 리키가 오랜 기간 병원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가 실패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리키를 향한 가족의 사랑을 변하지 않았으며, 리키가 힘든 치료 과정 속에서도 수년 동안 생활했었다는 리키의 회복력에 초점을 맞추었다.

즉, 많은 위험 요인 속에서 가족의 사랑과 리키의 회복력이 보호요인으로 작용하였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이렇게 알게 된 보호요인은 리키가 가족과의 자유로운 만남을 하게 하는 것과 스스로 사회생활을 경험하게 하는 것 등의 방법으로 계속해서 강화되었으며 결국엔 이것이 리키의 근본적인 치유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 특히 정신분열증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클라이언트가 왜 그러한 병을 앓게 되었는지, 무슨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집중을 하게 되며 이는 나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런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클라이언트가 가진 강점, 보호요인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어 그것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리키와 같은 심각한 상태의 클라이언트에게서 강점을 찾는 일이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이러한 시각을 가지고 훈련을 하는 것이 후에 나의 클라이언트가 될 많은 사람들에 대한 당연한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으며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리키의 아버지인 프레드릭 박사를 비난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책을 읽는 중간 중간에 그의 결단력 없는 태도와 자신이 정신과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딸을 방치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책 속에 빠져들게 되면서 비난을 받을 대상은 리키를 담당했던 의사들일 망정, 리키의 아버지인 프레드릭은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 의사의 딸이 그렇게 오랜 시간 비인간적인 병원시설에서 지낸 것에 대한 분노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사람들이 아무리 분노를 느낀다고 한들 프레드릭이 느꼈을 감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프레드릭은 정신과 의사였지만 리키의 문제에 있어서는 아버지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리키에게 문제가 생긴 이후 계속해서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대한 회의와 자신의 딸조차 치료하지 못하는 무능력함을 이유로 끊임없이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자기 자신에 대한 회의 때문에 리키의 병원에서의 생활이 최선의 길이 아니라고 느낌에도 불구하고 리키를 당장 퇴원시키지도, 다른 병원으로 옮기지도 못했을 아버지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물론 그의 행동이 리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겠지만 나는 그를 의사로서가 아니라 아버지로서 평가하고 싶다.

다시 말해서, 나는 그의 정신과 의사로서의 무능력함, 또는 정신과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딸을 오랜 시간 비인간 적인 치료를 받도록 방치했던 어리석은 판단 등을 질책하기보다는 끝까지 리키에 대해 고민하고 포기하지 않았던 그 사랑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뿐만 아니라 나는 ‘천국에는 새가 없다’ 라는 책의 제목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과연 그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처음에는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해서 평소에 심리,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클라이언트들에게 관심이 많으신 어머니와 토의해보기도 하였다.
그렇게 긴 생각의 끝에 내가 느낀 제목의 의미는 ‘착각’ 이었다.

즉, 천국에는 새가 없다 라는 문장은 치료과정에서 의사, 부모, 리키 자신 등 모두가 착각하고 있었던 명제였다.

 내가 생각하는 제목의 의미는 이렇다. 천국에는 새가 없다 라는 제목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리키의 천국에는 새가 있었다.

리키가 자살을 시도하고 온갖 폭력적이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했던 그 때에도 리키의 천국에는 포기하지 않는 새가 있었다.

자유롭게 날고 싶은, 원하는 일을 해내고 싶은 새가 끊임없이 존재하고 있었다.

책에 나오는 많은 정신과 의사, 리키의 부모, 심지어 리키 본인마저도 리키의 천국에는 새가 없다고 생각하였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새’가 아니라 ‘새가 잘 날 수 있도록 조성된 환경’이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하듯이 리키는 낙관주의자였다.

리키 스스로가 말한 내용처럼 그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희망을 놓지 않는 낙관주의자였으며, 이 때문에 리키는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차료과정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리키는 자신이 낙관주의자라는 ‘강점’으로 인해 최악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 희망을 위한 진정한 천국을 만들어가고, 그 천국의 새를 인식하게 된다.

 작가가 의미하는 제목의 뜻과 내가 생각한 뜻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는 확신하지 않지만 내가 만약 작가였다면 이런 제목을 통해서 우리가 정신병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작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 정신병을 가진 어떤 사람을 우리는 희망이 없는 사람, 의욕이 없는 사람,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 열망이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들도 우리처럼 그들이 끝없이 갈망하는 천국의 새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에게 해 주어야하는 일은 그들이 가진 천국의 새가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도록 ‘천국, 새’에 대한 희망을 일깨워주고 그들 스스로가 진정한 천국을 맞이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책의 작가였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키의 천국에는 새가 있었다’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그에 반대되는 ‘천국에는 새가 없다’라는 제목을 택하였을 것 같다.

나는 과제를 해야 한다는 부담스러운 마음과 의무감에 이 책의 첫 장을 넘겼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아동복지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생각해보아야할 많은 문제들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 많은 교제를 통해서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시각이나 관점 등을 이론적으로 배웠지만, 그것이 실제로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그를 위해 우리가 지금부터 훈련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천국에는 새가 없다’라는 제목이 주는 의미를 나 나름대로 정리해보고 그 의미를 통한 깨달음과 교훈을 얻을 수 있어서 매우 뜻 깊었다.

이 책을 읽고 내가 고민하고 생각해 본 문제들이 후에 내가 클라이언트들을 대할 때에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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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들과 이번 주 금요일 밤 11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마눌님이 큰 애와 작은애가 갈등이 있었다고 했고

서로의 애기를 녹음 해 놓았다고 한다.

큰 애의 술 먹고 난 후의 사건들을 되집에 볼 때 이번에는 뭔가 진지한 얘기를 햬줘야 한다는 마늘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런 약속이 있어서인지 <천국엔 새가 없다>라는 자전적 가족소설-1은 나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가족에 대한 소중한 의미를 나눌 수 있는 몇 가지의 중요한 포인트를 생각해 주었다.

그것을 몇가지 적으면서 이런 얘기로 시작해서 얘기를 진행해야지 하는 좋은 인폼을 주었다.

 

최근 들어서 부부의 사랑이야기에 이어서

가족에 대한 사랑에 대한 책을 연거푸 읽어서 인지 웬지 가정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단숨에 읽어 버렸다.

게다가 청계산의 산방 대장님의 큰 아들이 최근에 병원에 입원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응워느이 메시지를 보내드렸더니...

다시 건대병원에 입원했다고 답장이 왔다.

 

빠른 쾌유를 응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