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웅진, 2002(2012/11/1)

魚山/막걸리 2012. 11. 19. 12:30

<작가 소개>

1931. 10. 20 경기 개풍~ 2011. 1. 22 서울.

대중인기작가이면서 문학성도 뛰어난 작품을 발표했다.

 1944년 숙명여자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곧 호수돈여자고등학교로 전학했고 해방이 되자 다시 숙명여자고등학교로 돌아왔다.

이때 한말숙·박명성 등과 사귀었으며, 담임교사인 월북 소설가 박노갑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50년 서울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으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오빠와 삼촌이 죽자 생계를 잇기 위해 미8군 PX 초상화부에서 일했으며, 이때 화가 박수근을 알고 그의 그림에 감명받았다.

1970년 〈여성동아〉에 장편 〈나목 裸木〉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고 이어 〈부처님 근처〉(현대문학, 1973. 7)·

〈주말농장〉(문학사상, 1973. 10)·〈겨울나들이〉(문학사상, 1975. 9)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976년 〈동아일보〉에 〈휘청거리는 오후〉를 연재했다.

수필집으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1977)·〈살아있는 날의 소망〉(1982) 등이 있으며〈서 있는 여자〉(1985)·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등의 소설을 펴내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자리를 굳혔다.

40세의 늦은 나이로 출발하여 20년 동안 100편 안팎의 소설을 썼으며 많은 문제작품을 써냈다.

 6·25전쟁의 아픔과 분단의 사회현실을 그대로 그려내고 개성을 잃어가는 순응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1980년 한국문학작가상, 1981년 이상문학상, 1990년 대한민국문학상, 1993년 현대문학상, 1994년 동인문학상,

1999년 만해문학상, 2000년 인촌상, 2006년 호암예술상을 받았다.

지병인 담낭암으로 투병하다 2011년 1월 세상을 떠났다.

 

<책 소개>

유년시절부터 6.25를 겪는 스무살까지의 정신적, 육체적 성장 과정을 그린 자전적 소설.

분단과 이데올로기 전쟁을 겪은 민족사와 그 시대 민초들이 당해야만 했던 고난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저자는 1970년「 여성동아」장편소설 공모에「나목」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너무도 쓸쓸한 당신>,

<휘청거리는 오후>,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의 대표작이 있다.

 

<출판사 서평>

본문 중에서
엄마는 아직도 쫓기고 있었다. 엄마는 좌익조직으로부터 헛되게 도망을 다녔듯이 이번엔 전향한 후환으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전전긍긍하는 것을 전혀 터무니 없는 일종의 신경불안 증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 이사야말로 가장 성공적인 치료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새롭게 전개될 생활에 대한 예감에 충만한 특별히 아름다운 5월이었다.

그러나 하필 1950년의 5월이었다. 남달리 명철한 엄마도 환멸을 예비하지 않고 마냥 마음을 부풀린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미처 모르고 있었다. 그해 6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대가 높아 동네가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혁명가들을 해방시키고 숙부를 사형시킨 형무소도 곧장 바라다보였다. 천지에 인기척이라곤 없었다. 마치 차고 푸른 비수가 등골을 살짝 긋는 것처럼 소름이 쫙 끼쳤다. 그건 천지에 사람 없음에 대한 공포감이었고 세상에 나서 처음 느껴 보는 전혀 새로운 느낌이었다.

독립문까지 빤히 보이는 한길에도 골목길에도 집집마다에도 아무도 없었다. 연기가 오르는 집이 어쩌면 한 집도 없단 말인가. 형무소에 인공기라도 꽂혀 있다면 오히려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이 큰 도시에 우리만 남아 있다. 이 거대한 공허를 보는 것도 나 혼자뿐이고 앞으로 닥칠 미지의 사태를 보는 것도 우리뿐이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차라리 우리도 감쪽같이 소멸할 방법이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 냈다. 조끔밖에 없는 식량도 걱정이 안 됐다. 다닥다닥 붙은 빈 집들이 식량으로 보였다. 집집마다 설마 밀가루 몇 줌, 보리 쌀 한두 됫박쯤 없을라구. 나는 벌써 빈 집을 털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도 겁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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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아버님과 비슷한 연배이기에 또한 6.25전쟁까지 얘기이기에

또 다시 호기심이 발동했다.

한 번 책을 집으니 바로 놓기가 싫을 정도였다.

왜 요즘 난 아버님 시절에 대해서 이렇게 관심이 갑자기 늘어났을까?

어머님에게 관심을 가지면 되는데...

살갑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까?

하여튼 그 당시의 어려운 나날의 삶에 대해서 다시한 번 공감하고

짠한 느낌을 가졌던 시간이었다.

 

그 어려운 시절을 지냈던 아버님세대 덕에

지금의 내가 편안하게(?) 살고 있음에

다시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기억하고 싶은 귀절>

- 홍시빛깔의 잔광이 남아 있는 능선...(p28)

 

- 애호박의 날씬하고도 요염한 자태를 발견했을 때의 희열은... (p97)

 

- 나다닐 때 혼자인게 편할 뿐 아니라 그걸 즐기는 편이고, 그 동안을 방심, 한눈팔기, 공상, 구상, 관찰 등 내 나름으로

   무척 달콤하게 써먹고 있다...(p149)

 

- 환멸을 예비하지 않고 마냥 마음을 부풀린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미처 모르고 잇었다(p229)

 

- 시험공부 안 하는 것처럼 굴다가 쓰윽 합격해 보이겠다는 유치한 허엉심...(p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