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국립공원]전북 순창 복흥 구암사~백암산 상왕봉(741m)~순창새재~내장산 신선봉(763m)~대가저수지~구암사입구 다녀오기(2014/5/17/토)
◈산 행 지 : 백암산 상왕봉(741m), 내장산 신선봉(763m)
◈산행일자 : 2014년 5월 17일(토)
◈누구랑 : 마눌님과 함께
◈날씨 : 바람이 간간이 불었지만 더운 날
◈산행코스 : 구암사 입구(11:05)~구암사(11:20)~구암사3거리(12:10)~△백암산 상왕봉(12:58/741m)~순창새재(14:03)~
~능선3거리(16:14)~△내장산 신선봉(16:54/763m)~대가저수지(17:55)~구암사 입구(18:20)
*소등근재에서 능선3거리 오르다 취나물 뜯느라 1시간여 보냈다
◈산행시간 : 11:05~18:20(7시간 15분)
산행시에 차를 가지고 가게 되면 우선적으로 원점회귀를 생각한다.
이번 산행도 원점회귀를 고려하다가 생각하게 됐다.
구암사는 내 오랜 기억 속에 있는 절이다,
다시 찾은 구암사는 전혀 기억에 없었다. 그런데 나는 왜 구암사를 기억하고 있을까? 모를 일이다.
마눌님이랑 걷다보니 가끔씩 보이는 취를 뜯어서 나에게 취향기를 맞게 해준다.
그러다가 소등근재에서 내장산 능선으로 오르는 길 섶에는 내가 보기에도 취가 많았다.
등산로에서 벗어나 취를 찾아다니다 보니 누군가가 씨앗을 뿌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많았다.
가지고 있는 비닐봉지에 담다보니 금방 한 봉지가 된다.
시간을 보면서 이제 그만가자는 얘기를 하면서도 여기저기에 있는 취를 뜯었다.
내장산 신선봉은 여전히 계절의 순리에 따라서 짙은 녹음을 보여주었다.
건너 편으로 서래봉 암봉도 보이고...
대가마을로 하산하여 구암사 입구까지 걷다가 봉고 차를 히치에 성공했다.
목사님께서 친구와 구경왔다고 하신다.
친절하게도 입구까지 태워주셨다.
고맙습니다.
마눌님이 햇빛이 나는 도로를 걷는다고 궁시렁거렸는데
히치성공으로 순간적으로 불만이 제로가 되었다.
저녁에 집에서 내장산 취에다 삼겹살을 구워 막걸리 2병을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다녀온 개념도>
<구암사 가는 길 #1>
<구암사 가는 길 #2>
<영구산 구암사>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영구산(靈龜山)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이다.
623년(백제 무왕 24) 숭제(崇濟)가 창건하였다.
절을 세운 숭제가 신라 경덕왕 때 활약한 진표(眞表)의 스승인 숭제와 같은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1392년(조선 태조 1) 구곡(龜谷) 각운(覺雲)이 중창하였고, 태종 때에도 중창한 뒤 구암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부근에 거북바위가 있어서 사찰 이름을 구암사라 했다고 전한다. 당시 절터는 현재 구암폭포가 있는 부근이었다.
이후 사세가 점차
번창하여 전국 규모의 수도 도량을 이루었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
구암사가 다시 사세를
크게 일으킨 것은 영조 때(재위: 1724∼1776) 화엄종주인 설파(雪坡)
상언(尙彦)이
머물면서부터이다.
1800년대 초에는 백파(白坡) 긍선(亘璇: 1767∼1852)이 현재의 절터에 건물을 중창하고 선강법회(禪講法會)를 열어 크게 선풍을 일으켰다.
특히 긍선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와 교유하며 많은 편지를 남겼다.
이후 정관(正觀: ?∼1813), 설두(雪竇) 유형(有炯: 1824∼1889), 설유(雪乳) 처명(處明: 1858∼1904), 학명(鶴鳴: 1867∼1929),
석전(石顚:
1870∼1948), 운기(雲起:
1898∼1982) 등 많은 고승이 이 사찰에서 배출되었다.
이 중 설두는
성리학자인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6)과 불교 사상에 관해 문답을 나누었으며,
설유는 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1922)와 사상을 교류하였다.
조선 후기 전라도 관찰사였던 이경상은 긍선의 인품에 감동하여 인근 전답 350마지기를 기부하였고,
고종 때 어사인 이면상(李冕相)은 절 건물을 중건하기도 하는 등 조선시대 학자나 정치인들과 얽힌 일화도 많이 전한다.
한편 석전의 법호는 김정희가 긍선에게 준 글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는데, 김정희는 긍선에게 ‘석전만암(石顚萬庵)’이란 글을 주며
뒷날 제자 중에서 도리를 아는 자에게 이 호를 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한다.
이 글은 긍선에서
처명으로 전해졌고, 처명이 박한영(朴漢永)에게 법호 석전을
주었다고 한다.
1950년 6.25
전쟁으로 불에 탔으며, 1957년 복원했으나 1959년 다시 불에 탔고 이것을 1973년 5월에 중창하였다.
1997년에는 삼성각을 지어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삼성각, 요사채 2동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73년에 복원된 것이고, 내부에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한 삼존불과 후불탱화
신중탱화·산신탱화가 모셔져 있다.
유물로는 절 입구에 상언·긍선·정관의 부도가 있다.
또 김정희가 쓴 구암사 현판과 긍선과 김정희가 주고받은 서간문이 남아 있었으나 6.25전쟁 때 불에 타 사라지고
1940년에 석전이 쓴 《중수구암사기(重修龜巖寺記)》와 김정희가 쓴 편액 몇 편만이 전한다.
<안내글 #1>
<안내글 #2>
<대웅전 주련>
<구암사>
<들머리 이정표>
<능선길>
△722m에서 곡두재로 가는 호남정맥길은 금지구간이다!
금지구간 등산로 한 가운데에 나무를 식재해 놓았지만, 90%정도 나무가 뽑혔거나 부러져 있었다.
처라리 금지구간을 해제하는 편이 맞지 않을까?
그게 다 국민 세금일텐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길을 터주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백양사 뒤로 보이는 담양 병풍산>
<백양사>
<가인봉>
<상왕봉>
<멋진 소나무와 가인봉>
<상왕봉>
<이정표>
<순창새재>
<소등근재>
<지나온 백암산능선>
<내장산 신선봉>
<짙어가는 녹음>
<입암산>
<내장산 능선>
<신선봉>
<암봉인 서래봉이 보인다>
<문필봉>
<내장산 신선봉>
<안내글>
<서래봉능선>
<우뚝 솟은 망해봉>
<대가저수지>
<대가저수지>
<맨 우측이 상왕봉>
<대가마을에서>
<구암사 입구로 회귀>
목사님!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