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평규,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리더스북, 2012, 383쪽(2013/12/27/금)
<저자 소개>
1952년 9월 5일 경남 김해 출생. 1975년 경희대 기계공학과 졸업,
1979년 삼영기계공업사(현 S&TC) 설립, 2003년 통일중공업(현 S&T중공업) 인수, 2006년 대우정밀(현 S&T모티브) 인수,
2007년 효성기계(현 S&T모터스) 인수, 2008년 S&T홀딩스 대표이사 회장, S&T그룹 회장, 세종대 명예공학박사,
금탑산업훈장 수훈,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수상, 다산경영상 수상
<출판사 서평>
현장경영, 소통경영에서 기업의 미래를 찾는다!
이 책은 스물일곱 살에 창업해 33년간 기계공업 분야라는 한 길을 걸어온 S&T그룹 최평규 회장의 경영 스토리다.
아직도 경영자이기보다는 엔지니어라고 말하는 그는 오늘도 작업복을 입은 채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직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소통한다.
현장경영과 소통경영을 통해 해묵은 분규사업장과 만성 적자기업을 변화시켰고, 한계에 다다른 국내 제조업을 유지하고
고용을 창출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어 실행하였다.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과 사회, 기업과 역사에 관해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 대화의 기록을 엮어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로 펴냈다.
▶▶ 스물일곱 살에 창업해서 20개 계열사를 가진 대그룹의 회장으로 …
1979년 ‘삼영기계공업사’를 설립한 최평규 회장은 오로지 열교환기와 발전설비 기술 개발에 전념한 결과 삼영을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가난한 나라의 기계공학도가 가슴에 품었던 생각을 묵묵히 실천하면서 ‘기술보국’이라는 기업가치로 발전시켜온 것이다.
그가 이룩한 삼영의 기술력은 세계시장 점유율 1위와 국내 거래소 상장사 중 영업이익율 1위를 할 만큼
성공적인 경영의 밑바탕이 되었다.
그는 세계적인 중소기업인으로 성공한 데에 머물지 않고 외환위기 이후 한국 기계공업이 맞이한 현실을 시대의 소명으로 여기고
받아들였다.
2003년 통일중공업, 2006년 대우정밀, 2007년 효성기계를 차례로 인수하고 경영정상화를 이뤄냈으며,
현재 국내외 20개 계열사를 가진 기계공업 그룹을 경영하고 있다.
최평규 회장은 “나는 기계공학도가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작은 공장에서 기계 한 대 놓고 6명의 직원들과
사업을 시작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33년 동안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성장시켜왔습니다.
‘기술보국’을 돌에 새겨놓고 기계공업의 한 길만 걸어왔습니다.
원칙과 정도를 걸어온 것만으로도 버거운 고행이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험난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창업하고, 부실기업을 맡아 재건시키며 오늘날의 S&T그룹을 일궈낸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실패와 타협하지 않고 포기를 몰랐던 그의 경영인생은 이 시대 젊은이들과 30, 40대 직장인들,
그리고 경영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에게 실용적인 지혜를 제공할 것이다.
▶▶ 이 책은 현실을 긍정하는 젊은이들과의 대화의 기록이다
33년간 기계공업 분야에서 한 길을 걸어온 최평규 회장은, 2003년 이후 현장경영을 해오면서 기업과 사회, 기업과 역사에 관해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국 기계공업의 한가운데를 지나왔으니 할 말이 적지 않았다. 이 책은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아니다.
젊은이들과 주고받은 대화의 기록이다.
끝없이 가지를 치고 나갈 수 있는 이야기를 간소하게 줄여주고, 현재성이 있는 문제를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가급적 대화의 생생함을 살려 집필했다.
저자 최평규 회장은 젊은이들이 현실을 긍정할 이유를 찾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나는 젊은이들이 자기 인생을 아파한다는 점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이와 처지를 떠나서 누구나 그렇게 아픈 인생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단한 현실을 아픔이라 하면서 피하면 안 됩니다. 청춘의 꿈과 가능성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고 말하며, 이 책을 통해 1970년대를 살았던 남루하지만 꿈은 많았던 청년의 도전과 마주하기를 권한다.
공병호 박사는 “자신의 분야에서 자리를 잡는 데 웬만큼 성공한 이들의 삶을 바라볼 때 우리는 흔히 그가 갖는 현재의 성취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뒤안길에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절체절명의 위기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해서는 자주 잊어버린다.”라고 말하며, 젊은이들이 이 책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지 지적한다.
이런 점에서 열심히 사업하며 인생을 만들어온 한 사람의 인생 역정이 고스란히 담긴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는
더욱 의미가 있다.
역경을 극복한 저자의 경험에서는 인생의 교훈을, 창업과 기업 재건의 스토리에서는 기업 경영의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사람 살리는 M&A, 기업을 살리는 M&A
이 책은 유독 M&A와 관련된 내용에 분량을 상당 부분 할애하고 있는데, 그것은 S&T그룹의 성장과정은 물론
최평규 회장의 경영철학과도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최평규 회장은 M&A의 귀재로 불려왔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세간의 평가를 불편해한다.
통일중공업, 대우정밀, 효성기계 등 여러 기업을 인수한 결과를 두고 한 말이지만,
그는 자신에게 M&A의 특별한 재능이 있지 않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M&A는 잠깐의 인수단계 이후, 기나긴 통합과정 또는 경영정상화 과정을 거칩니다.
그것이 목적이고 본질이지요. 말하자면 인수 이후는 좀 예외적이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 신출귀몰한 재주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M&A를 기업경영의 도전과 기회로 보는 경영인에 대한 평가는 인수전의 승부를 놓고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업을 살리겠다는 경영인들에게는 창업이냐 인수냐의 차이만 있을 뿐 하루하루 고뇌해야 하는 경영 과제는 별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을 성장시킨 방편이었다고는 하지만, 타인이 실패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 성공을 일구어내는 일의 어려움은 예상보다 컸다. 특히 통일중공업을 인수하면서 노조의 이름 뒤에서 불법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현장의 관행과 맞서야 했다.
통일중공업을 인수한 2003년은, 대부분 노동조합이 국가경제 주체로 자기를 인식하거나 최소한 불법과 폭력투쟁으로는
국민들의 동의를 받지 못하고 고립된다며 반성하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통일중공업만은 갈라파고스 섬과 같이 시간을 비켜선 채 남아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인수 당시의 통일중공업을‘시대의 잘못된 유산’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온전히 사업을 잘하고 있는 기업을 적대적 M&A한 일이 없다는 점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한 번 망한 회사를 인수했다. 말하자면 ‘실패한 오너십’의 교체 선수로 들어간 셈이다.
그는 경쟁사를 제압해서 시장을 독식하기 위해서 하는 M&A는 큰 보람이 없으며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도 아니라고 한다.
기업의 오너만 바뀌었지 무엇인가 플러스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마이너스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그 지난한 역사가 꽤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새로운 경영자로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시대에 뒤처진 노조의 비상식과 왜곡된 인간성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과정도
드라마틱하다.
그럼에도 그는 상식으로 맞서고 기업인의 정의감으로 싸운 것을 당당히 밝힌다.
M&A를 통해 결국 이루고자 하는 결과가 기업의 성장뿐만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 위기 속에서 다져진 현장경영과 소통경영
최평규 회장은 현장경영인이다. 그가 말하는 현장경영은 문제를 대신 해결하거나 현장을 관리한다는 뜻이 아니다.
일하는 사람이 문제를 보고 다시 돌아서서 경영자를 마주보는 것이 아니고, 동시에 함께 문제를 바라보고 서는 것을 말한다.
즉, 문제를 상대로 같은 편이 되는 것이다.
혁신적인 경영자는 공감대를 만드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혁신적인 과제에 더 적극적으로 도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그래서 경영자가 현장에서 주도적으로 먼저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공감대를 만드는 과정이 경영자가 현장의 관행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직원들의 눈높이를 혁신과제에 맞게 적극적으
로 높이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현장경영의 목표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소통경영과 궤를 같이 한다.
한동안 ‘불통의 시대’라고 하다가 최근에는 ‘먹통’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사회적으로 소통이 안 된다고들 하지만 과거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많은 정보를 주고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소통이 안 돼서 문제라고 한다. 최평규 회장은 기술의 변화가 사회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 데서 그 답을 찾는다.
즉, 기술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가 사람들의 소통욕구를 더 키웠으며, 그런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현장경영과 소통경영은 해묵은 분규사업장과 만성 적자기업을 변화시켰다.
한계에 다다른 국내 제조업을 유지하고 고용을 창출하기 위한 방법을 현장에서 소통하면서 찾았다.
그는 ‘미래경영’을 이야기하면서 현재보다는 미래를 위해서, 지금 세대보다는 미래 세대를 위해서 기업을 경영해야 하며,
소통경영이야말로 미래경영을 위해서 반드시 강조되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기업 안에서도 세대간의 소통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갈수록 세대간의 생각 차이가 커지는 것은 기업의 입장에서도
심각한 문제지요. 기업의 신진대사는 일어나는데 새로운 세대가 기업의 DNA를 거부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면 기업이 영속할
의미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세대간의 단절이 문제되는 것과 또 다른 의미로 기업 안에서
세대간의 소통 문제도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 통합의 리더십과 기업가 정신의 복권을 꿈꾸며
저자는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된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불과 40년 만에 이룩한 한국의 경제 성장을 기적이라 부른다.
그럼에도 세계 근현대사에 보기 드물게 이룩한 한국 경제성장의 동인(動因)에 대한 평가가 완성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것이 성장시대의 단절을 가져왔다는 데 더 큰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최평규 회장은 성장시대의 주역(主役)은 피땀 흘려 일한 국민이며, 기업인과 근로자들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국민들의 열정과 땀을 하나로 모은 국가 리더십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는 점도 언급한다.
정치 리더십과 별개로 경제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물론 개발독재 시대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성장 시대를 이끈 동인을 이해함으로써 미래의 성장 동력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저자의 말을 빌려 통합의 리더십과 기업가 정신의 가치를 되새겨보자.
“과연 지금 젊은 세대는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할 의지와 정신이 있는지 의문이고, 실패를 무릅쓴 도전이 가능한 사회인지도
의문입니다. 더구나 국내 기계 제조업 환경이 그 때까지 버텨줄지는 더욱 큰 의문입니다.
제조업의 위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위기 상황은 점점 깊어가는데 아무런 대처도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글로벌 위기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위기의 양상으로 보면 이제 개별 기업이 성장동력을 찾거나 경쟁력을 강화하는 수준으로 나라 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두 차례의 위기를 거치면서 글로벌 경쟁 환경은 험난한 도전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다시 국가의 총체적인 부와 힘의 중요성을 실감합니다. 외국의 어느 모델을 찾는 것도 무용합니다.
미국과 일본이 다르고 중국과 인도도 다릅니다. 우리만의 대응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부지런하고 영민한 우리 국민들이 다시 열정을 갖고 도전할 수 있도록 새로운 성장시대의 비전과 방향이 필요합니다.
단절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제 과거 성장시대의 평가를 통해 거기서부터 새로운 성장시대의 비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새로운 성장시대는 새로운 통합의 리더십을 통해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더불어 더욱 쇄신된 기업가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통합의 리더십과 기업가 정신의 복권 을 꿈꾸는 이유입니다.”
<책속으로 추가>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이지요. 기득권이 클수록 그것을 내려놓기는 더 힘든 법입니다. 노조의 반발은 점점 커졌습니다.
근거도 없는 소문을 퍼뜨리거나 자극적인 말로 인신공격을 하기도 했지요.
인수전 후에 노조에서 나에 대해 많이 하던 말은 세 가지였습니다. ‘먹튀다. 천민자본이다. 마찌꼬바 출신이다.
’ 통일중공업을 경영하기에는 부적격이라는 말이었지만, 속내는 다시 주인이 없고 관리가 없는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먹튀라는 말은 사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경영의 본질을 심각하게 욕보이는 말입니다.
천민자본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내가 노조 간부들을 만날 때마다 물어보았습니다
.“도대체 천민자본이 무슨 뜻인지 알고나 하는 말이오?”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이 사람들이 정확히 천민자본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 하는 말이더군요.
천민자본이라는 말이 한때 유행하기도 했으니까 그냥 갖다붙인것 같았습니다.
천민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시원하게 욕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을 테지요. _pp. 129~131
노조가 하루가 멀다 하고 파업을 해서 회사가 직장폐쇄를 하자 노조가 쟁의행위 철회를 하면서 특근과 잔업까지 열심히 하겠다는 약속을 했지요.
그래서 회사는 직장폐쇄를 철회하고 휴가비와 인수 위로금도 지급했는데 노조는 다시 정문폐쇄로 회사는 물론이고 고객사,
협력업체까지 심각한 타격을 입혔고, 또다시 회사는 조업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정을 취재하면서 기자도 기가 찼던 모양입니다. 이런 사례를 본 적이 없었던 거지요.
직접적인 물리력으로 납품을 못하게 막고 있는 이 상황이 어떠한 법을 근거로 이뤄지고 있는지도 이해가 안 되었던 겁니다.
사실은 기사에 나온 것보다 훨씬 강하게 이야기했는데 기자가 그나마 걸러내고 쓴 것입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노조다. 통일중공업을 인수해서 이제 남은 것은 절망밖에 없다.
기업 하는 사람이 희망을 빼앗기면 뭐가 남는가. 지금이라도 당장 기업을 그만두고 싶은 심정뿐이다.’
‘대통령도 와서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라면 경영할 수 있겠는지 한번 보고 판단해봐라.
하다하다 안 되면 대통령에게 토론을 제안하겠다. 민주노총 간부들도 와서 봐라. 언론은 뭐 하고 있느냐.
이것은 다큐멘터리감이다.’ 같이 답답해하던 기자는 내 하소연 같은 이야기를 묵묵히 적고만 있었습니다.
‘이도 저도 안 되면 회사를 국가에 헌납하고 사업을 접겠다.’고까지 하니까 기자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 회사상황을 보고 나서 내 이야기를 들은 거니까 내가 진짜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물론 진심이었습니다.
기자들 만나기를 즐겨 하지 않는 내가 언론에 괜한 소리를 할 리도 없었습니다. _pp. 166~167
기업은 우선 언젠가는 망한다고 하는‘기업의 운명’과 그런 기업을 존속시키기 위해서 짊어지고 가야 할‘기업인의 숙명’을
냉정하게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업의 운명을 깊이 인정하면 할수록 기업인의 숙명은 더 또렷해지는 법입니다.
궁극까지 기업의 운명을 받아들이면 거기서부터 기업인에게는 기업의 운명에 대한 무한 책임감만 남습니다.
기업인이 하나하나의 위기 상황을 정면으로 대면할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문제 상황 속에 담대하고 솔직하게 뛰어들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업인의 생각과 행동의 결과에서 사익과 공익의 구분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솔선수범하고 자기 희생하는 기업인이 있으면 기업은 쉽게 망하지 않습니다.
이런 기업인의 의식이 위기관리경영의 알파이고 오메가입니다. _pp. 268~269
폭력이 야만인 이유는 인간성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명분에서라도 폭력은 인간성에 상처를 주게 마련입니다.
상대의 몸에 상처를 내거나 신체적인 아픔을 주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폭력을 쓰는 사람이나 상대방이나 양쪽 모두의 인간성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물리적인 폭력이든 말로 하는 욕설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폭력을 쓰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치료비 물어줄 것이 겁나서가 아니듯이 말입니다.
국가와 이 사회를 인정할 수 없어서 폭력으로 맞서 싸우겠다면 그것은 노사문제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회사에 출근해서 할 일도 아니고요. 기업은 정직한 경영자와 성실한 근로자가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고 시민으로서 국가나 사회에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 테두리가 노사관계의 한계입니다. 아무리 노사가 대립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테두리를 벗어나면 안 되는 것이지요.
일상화된 폭력이 존재하는 사회의 표본이 뉴스에서 보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후진국들이지요. 우리가 뉴스를 볼 때마다 측은하게 혀를 차지 않습니까. 가까이 일상화된 폭력으로 조직을 유지하는 곳이 조폭입니다.
어느 것이나 정상적인 기업이나 시민의 모습은 아닙니다. _p. 303
원칙을 한마디의 말로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기업이 사회에서 존재감이 있으려면 착한 기업이 되든지 강한 기업이 되든지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착한 기업이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요.
반면 시장에서 경쟁을 하다보면 강한 기업이 살아남는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래서 <100분 토론>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경제문제를 토론하면
서 사람들이 치열한 논쟁을 하지요. 요컨대 살아남아야 착한 기업도 될 수 있으니 강한 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반대로 착한 기업이 결국 살아남는 강한 기업이 될 거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영양가 있는 토론은 아닙니다.
어차피 기업은 착한 기업도 되어야 하고 강한 기업도 되어야 합니다. 어느 하나만 강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기업에는 착한 기업이 되기 위한 원칙과 강한 기업이 되기 위한 원칙이 모두 필요합니다.
착한 가치, 즉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가치를 원칙으로 삼아서 기업경영이 그 원칙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고,
강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혁신하는 기업혁신의 원칙도 세워서 지켜나가야 합니다. _p. 359
미래에 대한 낙관적 비전과 현재에 대한 비관적 검토는 내가 일하는 방식입니다.
자칫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 상반된 성향이 내가 일하는 방식에서는 조화를 찾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역전에 지게꾼들이 많았습니다. 요새 택배회사 오토바이만큼 많은 지게꾼들이 역전에서 일감을 구했지요.
그 역전의 지게꾼들이 지게에 짐을 가득히 싣고 길을 다니면서 하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먼 데 보고 가더라도 발밑을 조심해라.’
중심을 잘 잡고 먼 길을 가려면 눈을 들어 먼 데를 보고 걸어야 하고, 또 당장 발밑에 돌부리라도 걷어차서 넘어지면 낭패니까
발밑도 조심하며 가야 했지요.
두루 잘 보고 가기 어려웠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지 일 잘하는 지게꾼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기업을 경영하다보면 생각한 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항상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등장해서 새로운 문제를 만들고 그것 때문에 성공하기도 하지만 실패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시작해도 막히거나 성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나는 현재 내가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을 의심하고 항상 보이는 것 이면에 있을 수 있는 다른 관련성에 촉각을 세웁니다.
끊임없이 점검할 것을 요구하니까 직원들도 나를 비관적인 사람으로 볼 수 있지요.
그렇지만 그런 과정이 없다면 나는 미래와 사업의 목표에 대해서 그렇게 낙관적인 비전을 가질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재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부지런히 대비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비관적 낙관주의’라는 말은 말이 됩니다. _pp. 376~377
책속으로
아마도 유신반대 시위를 하는 과정에서 내가 후배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것 같아요.
공대생으로서는 보기 드문 면모를 보여준 것이지요. 그때 공대생들 중에서 사회적인 이슈를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게다가 학생운동의 현장만큼 비장한 문학의 힘이 필요한 데도 없지 않습니까.
나는 그저 다른 공대생들과 조금 달랐을 뿐이지요. 강의실 칠판에‘학우여!’로 시작하는 격문도 쓰곤 했는데 내가 봐도 제법
감동적이었어요. 또 삼삼오오 모이면 시 국과 정세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었지요.
특별히 무슨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원래 이야기꾼 재주가 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순진한 후배들은‘뭔가가 있는 선배다.’싶었을 겁니다.
그렇게 1972년도를 지나면서 나는 단순한 공과대학에서 별로 단순하지 않은 특별한 사람 중 하나가 된 것입니다. _p. 25
서울로 돌아와서 먼저 내가 갖고 있던 17평짜리 아파트를 400만 원에 팔았습니다.
그리고‘삼영기계공업사’(현 S&TC)를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직원 6명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일단은 맥얼로이에서 개발한 핀튜브 피닝머신을 가지고 와야 했는데 돈이 없었습니다.
관세를 포함해서 6,000만 원이 훨씬 넘는 기계였습니다.
그때는 아파트 가격이 지금처럼 높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아파트 10여 채 값이었으니까 거금이었지요.
빈손이나 다름없는 스물일곱 살의 젊은 엔지니어에게 그렇게 큰돈을 투자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때는 벤처창업을 지원하는 엔젤 투자자도 없던 때였지 않습니까.
하는 수 없이 아버지, 매형의 집까지 은행에 담보로 잡히고 신용장(L/C)을 열고 기계를 들여오기로 했습니다. _pp. 47~48
나는 사업을 하면서 명함을 두 개 가지고 다녔습니다. 하나는‘부장 최평규’이고, 다른 하나는‘대표이사 최평규’.
사장은 나이가 좀 들어야 한다는 사회의 통념을 존중하기로 한 것입니다.
장사하러 갈 때에는 부장 명함을 들고 가고, 수주하고 나면 대표이사 명함을 주고 계약을 했습니다.
젊은 엔지니어의 순수한 열정이 때론 영업에 큰 밑천이 되기도 했습니다. 참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니다보니 한 3년 만에 은행 빚을 거의 다 갚았습니다. _p. 57
한마디로‘기계쟁이’의 고집이었지요. 그때는 모두가 왜 하필 그런 회사를 인수하려고 하느냐고 야단이었습니다.
심지어 창원의 모 기관장은 통일중공업이 지역 기업인데도‘망해야 되는 회사’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주변 기업들도 통일중공업 노조의 악영향을 받게 될까 봐‘그냥 없어지게 놔두라.’는 편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통일중공업은 지역에서 천덕꾸러기였습니다. 만성적자 기업인 데다가 자타가 인정하는 강성노조의 대명사였으니까요. 원래 기업인수라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지만 인수대상이 통일중공업이었으니 당연히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고,
큰 결심을 해야 하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어떤 결심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자기 자신의 준비 정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_pp. 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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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은 언제나 메시지를 남게 한다.
S&T그룹이라는 회사를 이 책을 통해 알게되었다.
통일중공업은 익히 알고 있었던 회사인데....
이렇게 소유자가 바꾸어 지금은 훌륭한 회사가 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