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록

[경남 고성]동해 북촌~구절산(559m)~철마령~철마산(394m)~응암산(432m)~시루봉(408m)~우두포 다녀오기(2013/12/4/수)

魚山/막걸리 2013. 12. 5. 16:24

산 행 지  :  경남 고성 구절산(559m), 철마산(394m), 응암산(432m), 시루봉(408m)

산행일자 :  2013년 12월 4일(수)  

누구랑 : Koshark님과 막걸리

날씨 :  바람도 없고 포근한 날씨

산행 코스 : 동해 북촌(08:30)~곡산봉수대(09:17)~△구절산(559m/10:10)~폭포암(11:25)~구절산(559m/12:40)~

                  ~철마령(13:40)~△철마산(394m/13:55)~△응암산(432m/14:45)~△시루봉(408m/15:20)~우두포(16:15)

산행 시간 : 08:30 ~ 16:15(7시간 45분)

 

Koshark님과 산행지를 결정하기 위해 상의했다.

해남 두륜산은 다음으로 미루고 고성 구절산으로 정했다.

물론 그러한 상의는 어쩌면 내 임의로 설득했다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이유는 뭐가 있겠는가?

단지 그냥 끌려서 가는 것이지요!

 

06:00시에 만나서 출발했다.

아침은 거류면 24시간 하는 곳에서 해장국을 먹고

북촌 입구에서 주차하고 들머리를 출발했다.

 

날씨가 바람 한 점 불지 않아서인지 포근한 아침이다.

단지 아쉬움이 있다면 바다위에 떠 있는 뿌연 아침 안개정도....

아무것도 보이질 않으니....아쉽기만 하다!

 

당항포!

임진왜란과 이순신장군!

다음에 이런 글들을 읽으면 눈이 크게 떠질것 같다.

 

우두포에서 아침에 명함을 받은 택시 기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10여분 후에 택시가 도착했다.

기사님은 지름길로 간다면서 산행시에 지나왔던 철마령을 넘어서 왔다.

넘으면서 기사님으로부터 옛날 이야기를 들으면서... \10,000 드리고...

 

날씨도 봄날처럼 따스했고

바람도 없어서 아주 여유있게 쉴떄는 쉬면서 쉬엄쉬엄 걸었던

최근들어 정말 여유있는 산행이었다.

광양 이순신대교 넘기 전에 수육에 저녁을 먹고 귀가했다.

 

Koshark님과 13년 산행은 이걸로 마쳤다.

14년에도 지속되기를 바래본다.  

 

<다녀온 개념도>

<들머리인 북촌>

<들머리 안내도>

<구절산 오르는 숲 길 #1>

<곡산 봉수대>

<구절산 오르는 숲 길 #2>

<구절산 정상>

동해면에 위치해 있는 구절산은 해발 559m의 아담한 산으로 산행에 부담이 없고,
주변 바다 풍경이 뛰어나며 정상에 서면 다도해를 비롯한 주변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구절산에서는 구절폭포를 만나게 되는데 이 폭포는 일명 용두폭포, 또는 사두암폭포로 불린다.

높이 10m 정상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관이며 폭포에서 일어나는 물방울로 더위를 잊을 수 있다.

폭포 오른쪽에 백호굴이라는 석굴이 있으며, 절벽 왼쪽에는 100여 명이 한 자리에 앉을 수 있는 보덕굴이 있는데

신비한 약수가 솟아나고 있다. 

고성군 동해면에 있는 구절산은 장기마을 뒷쪽에 자리 잡은 동해면을 대표하는 산으로 옛날에 구절도사라는 신선이 살고

있었다고 하는데 도사는 인간이 먹는 음식은 먹지 않고 오직 산에서 나는 산삼을 일년에 두 번씩 캐어먹고 살았다고 한다. 구절도사를 만나려면 아홉구비의 폭포에서 아홉번 목욕을 하고 절을 아홉번하고 도사를 아홉번 불러야 나타난다고 하여

구절도사라 불렀다고 하며, 그래서 산 이름을 구절산, 폭포를 구절폭포라 부르고 있다.

구절도사는 심술이 많아 구절산 구절령 줄기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외지에 나가면 출세를 못하게 하고

그 대신 구절도사는 인간의 생명을 존엄하게 여기는 도사로 동해면 출신이 전쟁터나 징용에 끌려가면 가족이 도사에게

빌면 소원을 들어주어 목숨을 잃는 일이 없이 안전하게 돌아오게 하는 효험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지금도 도사가 살았다는 조그마한 동굴이 구절산에 남아있다.<고성군청>

<구절산 정상 이정표>

<구절산 정상 산불감시초소>

<바위 #1>

<소나무와 너덜>

<철마령으로 가는 바위암봉>

<이정표>

<철마령>

<폭포암 #1>

<구절폭포>

<폭포암 대웅전>

<약사여래불>

<폭포암과 구절폭포>

<당항포>

※당항포대첩 이야기

1592년 6월 5일, 전라좌수사 이순신과 전라우수사 이억기, 경상우수사 원균이 지휘하는 전선 51척과 중.소선 수십척의 연합함대는

 거제도 주민들로부터 "일본 함선들이 고성의 당항포에 정박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고 이에,

조선 수군 선단은 당항포 포구까지 이십여 리의 긴 해협을 따라 일렬 종대로 진입하였다.

당항포 포구에는 일본군의 대형 전함 9척, 중형 전함 4척, 소형 전함 13척이 정박 중이었고 일본 수군은 조선 수군의 선단이 포구로

 접근하자 일제히 조총을 사격하면서 대응태세를 취하였다.

이순신은 일본 수군의 육지 탈출을 봉쇄하기 위해 그들을 바다 가운데로 유인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 수군 선단이 철수하는 척 하자, 일본군은 조선 수군의 뒤를 추격하였다.
일본군 선단이 포구 밖으로 나오자, 조선 수군은 신속히 진형을 바꾸어 퇴로를 차단하고 거북선을 뒤따르던 판옥선에 탄 군사들이

 불화살을 쏘아 누각선이 화염에 휩싸이자, 당황한 적장은 우왕좌왕하다가 조선군의 화살에 사살되고 말았다.

전의를 상실한 일본 수군 선단의 대다수는 당항포 먼바다에서 격침되었으며, 일부 함선이 포구 안으로 도피했으나

이튿날 새벽에 탈출을 시도하다가 해협 입구를 지키고 있던 조선 수군에 의하여 모두 격침되고 말았다.

조선 수군은 이 당항포 해전에서 적선 26척과 승선 병력 전원을 수장시키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고성군청>

<철마령가는 능선>

<바위>

<구절산 정상>

<철마령>

<소나무 길>

<철마산 삼각점>

<철마산성>

<응암산 가는 길>

<임도길>

<응암산 삼각점>

<응암산>

<응암산 정상>

<구절산능선>

<거제도 앞 바다>

<맨 뒤는 마산>

<시루봉에서 본 거제앞 바다>

<지나온 능선>

<오른쪽 맨 뒤 거류산>

<시루봉>

<시루봉 산불감시초소>

<우두포 #1>

<우두포 #2>

<우두포 버스정류장>

<우두포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