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전남 보성 국기봉(528m), 망일봉(652m)
◈산행일자 : 2014년 2월 18일(토)
◈누구랑 : 혼자서
◈날씨 : 봄날씨와 같이 포근함
◈산행코스 : 율어 주릿재(12:08)~호남정맥 분기점(12:21)~동소산 분기점(13:22)~△국기봉(528m/13:33)~
~갈마치(16:00)~△망일봉(652m/16:50)~용암제(17:50)~교촌마을(18:00)~서재필기념공원(18:20)
*교촌마을서 걷다가 히치에 성공하여 서재필기념공원 도착, 보성에서 근무중인 영만이가 도착하여
주릿재로 회귀하고 벌교읍에서 꼬막정식까지 대접받고 여수로 귀가
◈산행시간 : 12:08~18:00(5시간 52분)
주릿재를 오랫만에 찾았다.
박무로 인해서 전망은 없었지만 그래도 보성은 조정래님의 <태백산맥>으로 더더욱 알려지게 되고
주릿재에는 태백산맥문학비가 서 있다.
예전에도 있었나? 하여튼 태백산맥을 읽은 기억도 아스라하다.
지명이나 산들을 만날 때면 흐릿해가는 두 눈이 번쩍.....그런 때가 있었다.
율어면에서 동소산까지는 길을 잘 다듬었는지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었다.
게다가 호남정맥꾼들이 지나가기에 표지기도 다양하게 붙어 있고
오늘 산행은 전반적으로 국기봉까지는 아주 수월했다.
국기봉에서 갈마치까지 약 2시간 반은 그야말로 가시잡목으로 고생 그 자체였다.
바지를 입었어도 장갑을 끼었어도 속수무책이었다.
임도가 잘 나있는 것이 오히려 고생을 가중시켰다.
편하게 임도를 따라가다가 잡목을 헤치고 능선으로 오를 때...!
또한 임도가 눈에 띄기에 임도를 보고 하산하다가 능선길을 잃어버려서 다시 능선으로 오를 때의 그 짜증(?)!
마지막 망일봉 정상로 가는 길은 아주 편안했지만 마지막 용암제로 하산할 때 마지막에는 다시 고생을 하고...
이러한 고생을 했지만 마지막에 망일봉 삼각점을 발견했을 때의 그 안도감이란...!
동안 고생했던게 순간적으로 그쁨으로 변하는 그 순간을 누가 알까?
동소산분기점에서 망일봉까지는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었다.
리본이나 이정표도 전혀 발견할 수 없어서 내가 맞게 가는가?를 계속 회의하면서 걸었다.
그러다가 망일봉 삼각점과 이정표를 발견했을 때의 그 느낌이란.....
보성서 근무하는 영만이를 서재필 기념공원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시간 여유가 있어 서재필기념관 건너편에 있는 조각공원을 구경하였다.
중간 정도나 구경했을까? 전화 벨소리가 난다.
도착했단다. 후다닥 되돌아 가니,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었다.
반갑게 악수를 하고는 주릿재까지 송광면을 거쳐서 갔다. 차 안에서 이러저러한 얘기들을 나누면서...
주릿재에서 각자 차를 타고 벌교 우렁탕을 먹으로 갔다. 하필이면 오늘 문을 닫았다.
결국에는 꼬막정식을 함께 먹었다. 난 막걸리도 1병을 맛있게 마셨다.
식사 후 아쉬움을 뒤로 하고 보성과 여수로 각자 집으로 가면서, 자주 이용해 달라는 친구 얘기를 생각하면서 난 행복하였다.
<다녀온 개념도 #1>
<다녀온 개념도 #2>
<다녀온 개념도 #3>
<주릿재 #1>
주릿재는 벌교읍 추동리 내추마을 서쪽에서 존제산을 넘어 율어면 유신리에 이어지는 고개이다.
고갯마루에서 양쪽으로 시원하게 아스팔트 포장이 된 이 길은 80년 후반까지만 해도 달구지 하나가 겨우 다닐 정도의 험한 산길이었다.
양쪽 마을의 사람들은 그 좁고 구불거리는 산길을 거의 다 걸어서 다녔다.
소설 <태백산맥>에서 주릿재와 율어는 제2부가 시작되는 무대이다.
율어는 산줄기들이 겹을 이루며 둥근 성벽의 형상을 하고 있는 분지다.
천연요새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그 지형지세 때문에 옛날 동학군의 비밀 훈련장이기도 했고,
해방 직후의 혼란기에는 ‘작은 모스크바’로 불릴 정도로 빨치산들의 소굴이 되기도 했다.
염상진이 이끄는 야산대의 활동은 이 주릿재에 서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대결하는 심재모의 모습도...
<주릿재 #2>
<주릿재 #3>
<율어 유신리와 유신제>
<외서면으로 가는 방향은 석거리재로 가는 호남정맥길>
<바위 #1>
<낙엽길>
<바위 #2>
<바위 #3>
<존제산이 안보일 정도로 희쀼윰한 박무>
<바위 #4>
<배골마을 이정표>
<동소산 분기>
여기 이후로 망일봉까지 고생길
<잡목으로 덮인 국기봉(528m)>
<송전탑을 따라...>
<강진에서...>
<송전탑을 따라서>
<갈마치>
송전탑괴 헤어져서....
2번을 임도길에서 능선으로 오르다가 고생을 해서 사진을 그냥 패스했는데
지나고 보니 갈마치라고 생각되어 다시 되돌아 가기가 싫어 찍은 것이었는데...
우측으로 희미하게 임도길이 보인다
<아~~이렇게 잘 다듬어진 산죽길이라니....>
<송광사 방면>
<연이어지는 산죽길>
<망일봉>
휴~~~
<망일봉 삼각점>
<하산 길>
<산죽 #1>
<산죽 #2>
<산골>
<용암제 #1>
<용암제 #2>
<교촌마을>
<교촌마을 정자>
<용암제 #3>
<추모탑>
<서재필 기념공원>
서재필 선생은 1864년 1월 7일 문덕면 용암리 가내마을에서태어나 농촌의 풍경과 정서를 익혔으며,
1884년 갑신개혁을 주도해 3일천하를 이룬 뒤 이의 실패로 망명 미국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의학박사가 된후
1895년 귀국하여 독립신문을 창간하고독립협회를 결성하여 민중운동을 이끌어 오시는등 평생을 조국의 광복과 근대화를 위해 열정을
다하시다 1951년 병석에서 우리나라 명운을 통탄하며 8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셨다.
선생의 생전의 위업을 기리고자 1992년 사업을 시작하여 사당건립, 송재로 개설, 독립문건립을 통해 유적지로 면모를 갖추었으며
2001년 완공을 목표로 조각공원 조성, 유물전시관 건립, 생가등이 복원되면 명실상부한 기념공원으로 가꾸어 진다.
특히 서재필선생 생전의 유품 800여점을 전시한 유물전시관이 개관되며 국민교육장으로서 역할도 큰 기대가 된다.
<문이 닫혀 못들어가 당겨본 개화문>
<독립문>
<용암3거리>
<,용암3거리>
<조각공원-조화의 순간/1998>
<조각공원-박새섬/1999>
<조각공원-불심/1998>
<조각공원-사랑해요/1999>
<조각공원-묵시공간/1998>
<조각공원-대지/1999>
<조각공원-Image 98/1998>
<조각공원-온고지신/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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