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록

[월출산국립공원]강진월남사지~바람재~도갑산(401m)~도갑사~미왕재~용암사지~월출산천황봉(809m)~월남사지 회귀하기(2013/11/15/금)

魚山/막걸리 2013. 11. 19. 11:39

산 행 지  : 도갑산(375m), 월출산 구정봉(705m), 천황봉(809m), 

산행일자 : 2013년 11월 15일(금)

누구랑 : 혼자

날씨 : 걷기에 좋은 늦가을 

산행코스 : 강진 월남사지(09:10)~바람재(10:37)~△도갑산(401m/12:01)~도갑재(12:15)~월출산 도갑사(12:53)~

                ~미왕재(14:22)~△구정봉(705m/14:56)~용암사지3층석탑(15:18)~△천황봉(809m/16:34)~

                ~월남사지(17:50)

산행시간 : 09:10~17:50(8시간 40분)

 

해남 두륜산을 가기 위해서 나섰다.

어제 저녁에 비가 와 그친 후라서인지 새벽길은 짙은 안개에 쌓여 있었다.

강진읍으로 아침을 먹기위해 들어갔다.

터미날 근처 24시간 운영하는 식당은 콩나물국에 바지락이 들어있어 더욱 시원하다.

시골에서는 아침을 먹기 위한 식당을 아는게 큰 정보가 되는데...

 

나와서 이런 날씨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는 고민을 했다.

내 경험으로는 아침에 짙은 안개가 낀 날 아침햇살이 나면 날씨도 따뜻하던데..

어떻게 하나....?고민하다가 길 찾기에 고생할 수도 있으니 월출산국립공원으로 순간 변심을 했다.

강진에서 본 월출산은 영암보다는 훨씬 부드럽다.

경포대 입구의 월남사지 입구에다 주차하고 산행 준비를 했다.

머리 속으로 어디로 갈까를 부단히 생각을 하면서

 

월출산은 회귀를 하려면 차편이용이 쉽지가 않기에 왕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천황사에서 도갑사를 왕복한다는....

출발을 하는데 햇빛이 나면서 하늘이 청명해지는데....

부질없는 아쉬움이....다음으로 미루고

 

도갑사를 안고 있는 도갑산!

용암사지를 안고 있는 구정봉!

하늘을 향해 우뚝솟은 바위 덩어리인 천황봉!

마지막으로 월남사지를 포근히 안아주고 있는 월출산!

 

이번 산행은 구정봉 아래에 있는 용암사지를 보면서 웬지 모르게 쓸쓸함이 느껴졌다.

하늘을 향해 말없이 서있는 석탑, 이끼긴 초록색 물이 들어있는 돌확, 물은 가득히 고여있지만 먹기가 망설여지는 우물...등등

저 절터도 그 옛날에는 번성하였을텐데...

언젠가 이 터도 인연이 닿으면 다시 절집이 지어질때가 있을 그 날을 생각해 보기도 하면서...

 

다음에는 도갑사계곡으로 오르다가 출입금지지역인 상견암~미왕재 구간을 가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다녀온 개념도>

<금릉경포대 입구>

강진의 북쪽 영암군과의 경계를 이루는 월출산은 옛부터 남쪽의 소금강이라 불리워 왔다.
이 월출산의 남쪽 계곡이 바로 금릉 경포대로 불리는 또 하나의 강진 절경이다.

설악산과 청송 주왕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암산으로 꼽히는 월출산이 거느린 여러 계곡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계곡미를 자랑하는 금릉 경포대계곡은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에 위치하고 있다.

동해안에 있는 강릉 경포대와 이름이 같아 간혹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금릉 경포대는 바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첩첩산중에 있는 계곡이다.

월출산의 천황봉과 구정봉에서 발원하여 약 2㎞에 걸쳐 흘러내리는 경포대 계곡은 크고 작은 바위 사이로 맑은 물과 곡류 그리고 폭포수가 어우러지는가 하면, 계곡물마저 차디차서 여름 피서지로는 더할 나위없는 곳이다.

<금릉 경포대 들머리>

<월출산 #1>

<바람재>

<바람재에서 본 천황봉>

<바람재에서 본 구정봉>

<뒤로 보이는 천황봉>

<장군바위>

<향로봉>

<월출산 #2>

<월출산 #3>

<뒤로 흐릿하게 보이는 주지봉>

<월출산 #4>

<미왕재>

<도갑산으로 가는 산죽밭>

<도갑산>

<땅끝지맥과 갈림길>

<도갑사로 가는 길>

<도갑사 입구>

<도갑사 일주문>

도갑사는 월출산에 있는 절로, 신라말에 도선국사가 지었다고 하며 고려 후기에 크게 번성했다고 전한다.

원래 이곳은 문수사라는 절이 있던 터로 도선국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인데,

 도선이 자라 중국을 다녀온뒤 이 문수사터에 도갑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 뒤, 수미·신미 두 스님이 조선 성종 4년(1473)에 다시 지었고, 한국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타 버린 것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팽나무>

여름에는 잎들이 무성했을텐데...

<국보 제50호 월출산 해탈문>
도갑사에서 가장 오래된 해탈문은 모든 번뇌를 벗어버린다는 뜻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절의 입구에 서 있다.

좌우 1칸에는 절 문을 지키는 금강역사상이 서 있고, 가운데 1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 위쪽에는 도갑사의 정문임을 알리는 ‘월출산도갑사(月出山道岬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반대편에는 ‘해탈문(解脫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도갑사 해탈문은 우리 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산문(山門)건축으로,

청평사 회전문(보물 제164호)과 비교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도갑사 절집>

<대웅보전과 보물 제1433호 도갑사5층석탑>

이 탑은 고려시대 석탑의 형식을 잘 나타내고 있는 예로서 균제되고 정교한 기접은 사라졌으나 전체적인 규모에서 매우 안정감이 있으며 체감률도 좋은 석탑이다. 조성 년대는 고려초기로 추정된다.

1987년 6월 1일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2002년 기단부를 찾아 복원한 후 2005년 보물로 승격되었다.

<도갑계곡 단풍>

<보물 제89호 도갑사석조여래좌상>

전라남도 영암군 도갑사의 미륵전에 모셔져 있는 있는 석조불상이다.

이 불상은 몸체와 광배(光背)가 하나의 돌로 조각되어 있어서 마치 바위에 직접 불상을 새긴 마애불과 같은 기법이다.
다소 경직되고 형식화된 수법을 보여주지만 얼굴표정에서 훈훈한 정감을 느끼게 하는 불상이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양식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투박하고 생략이 강한 고려적 요소를 충실히 보여주고 있는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보물 제1395호 도갑사 도선수미비>

도갑사 대웅전에서 북동쪽으로 오르는 숲속 길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도갑사를 창건한 도선국사와 수미대사를 추모하고 있다.
조선 인조 14년(1636)부터 효종 4년(1653)까지 17년이나 공을 들여 세운 비로, 비몸 표면에는 약 1,500자의 글자를 새겨 넣었다. 조선시대의 석비로는 비교적 규모가 큰 편에 속하며 큼직한 거북받침이 안정감을 주고

전체적인 조각수법이 뛰어난 우수한 석비이다.

<월출산 #5>

<월출산 #6>

<월출산 #7>

<월출산 #8>

<우측이 천황봉>

<월출산 #9>

<국보 제 144호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 구정봉의 서북쪽 암벽을 깊게 파서 불상이 들어 앉을 자리를 만들고, 그 안에 높이 8.6m의 거대한 불상을 만들었다. 불상의 오른쪽 무릎 옆에는 부처님을 향하여 예배하는 모습을 한 높이 86㎝의 동자상을 조각하였다.

머리 위에는 크고 높은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고, 신체에 비하여 비교적 큰 얼굴은 근엄하고 박력있는 느낌을 준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는 옷은 얇게 표현하여 신체의 굴곡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옷주름은 가는 선으로 새겼는데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 아래까지 흘러 내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섬세한 옷주름과 양감있는 신체의 표현에서 탄력성과 박진감이 잘 나타나고 있다.

당당한 신체에 비하여 팔은 가늘게 표현하고 있으며,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를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무릎 위에 올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따로 조각하였으며,

그 안에 연꽃무늬와 덩굴무늬를 새겨 넣고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새기고 있다.

전반적으로 안정감과 장중한 인상을 주며,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기법과 더불어 박진감이 잘 나타나고 있다.

반면 신체에 비하여 비교적 커진 얼굴과 너무 작게 표현된 팔 등에서 불균형한 비례와 경직된 표현이 엿보여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짐작된다.<영암군청>

<보물 제1283호 월출산용암사지3층석탑>

중심 건물터 남동쪽에 있는 이 탑은 일명 ‘탑봉’이라 불리는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전체의 무게를 받치는 기단(基壇)을 2단으로 두었으며,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올렸다.
1966년 무너진 석탑을 다시 세울 때,

아래층 기단에서 백자사리호 1점, 금동보살좌상 1점, 청자대접 1점, 사리 32과, 철편 11점 등이 발견되었다.

<용암사지>

용암사는 기암괴석이 많아 남쪽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월출산의 구정봉 아래 있다.

300평에 가까운 부지에 수많은 기와조각들과 주춧돌이 남아 있어 건물이 있던 자리임을 알게 한다.

1955년 ‘용암사’라고 쓰인 기와가 출토되어『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용암사’임을 알게 되었으나

구체적인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용암사 주춧돌일까?>

<3츨석탑과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월출산 #10>

<베틀굴>

<남근바위>

<월출산 #11>

<월출산 #12>

금년 8월경 이 바위아래 그늘에서 쉬었던 기억이...

<월출산 천황봉과 삼각점>

<월출산 #13>

<날머리>

<보물 제313호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월남사는 고려 중기에 진각국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창건 이후의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진각국사의 성은 최씨이고 이름은 혜심(慧諶)으로 24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어머니의 죽음으로 출가를 하게 되었다.

출가 후 보조선사 밑에서 수도를 하였고 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대선사(大禪師)가 되었으며,

고종 21년(1234)에 57세로 입적하였다.

월남사 터에 서 있는 이 비는 절을 창건한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이규보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며, 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 고종 때로 추정된다.<강진군청> 

<국보 제298호 월남사지3층석탑>

월남사터에 남아있는 삼층석탑으로, 단층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이 탑은 백제의 옛 땅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백제 양식을 많이 따르고 있다.

 기단 및 탑신의 각 층을 별도의 돌로 조성한 것이나 1층의 지붕돌이 목탑에서처럼 기단보다 넓게 시작하는 양식 등이

그러한 특징이 된다.

대표적인 백제탑이라 할 수 있는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 제9호)과 비교해볼 수 있으며,

전라도 지역에서는 규모나 양식으로 매우 중요한 석탑이라 할 수 있다.<강진군청>

<월남사지3층석탑과 달>